훈련을 진행하다 보면 어떤 날은 훈련 기술보다 말이 더 어려웠다. 강아지가 아니라, 보호자에게 건네는 말. 특히 그 말이 지금 방식은 조금 바꿔야 해요라는 뜻을 품고 있을 때는 더 그렇다.
일하다 보면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을 누구도 다치지 않게 부드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아지 교육에서 실수는 흔하고, 보호자의 실수도 흔하다. 처음이라서라는 말이 변명이 아니라 정말 사실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어떤 실수들은 오래 누적되면 강아지에게 상처가 되고, 결국 보호자에게도 더 큰 상처로 돌아온다. 그래서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나는 그 집에서 잠깐 지나간 사람일 뿐이니까….
문제는 ‘틀림’이 대부분 악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호자가 틀리는 이유는 대개 세 가지다.
첫째, 너무 사랑해서.
둘째, 너무 지쳐서.
셋째, 너무 급해서.
사랑이 많으면 강아지의 요구를 못 지나친다. 낑낑대면 안아주고, 짖으면 달래고, 발을 숨기면 “아휴 무서워?” 하며 그만두게 된다. 그 순간은 따뜻하다. 하지만 강아지는 그 따뜻함을 규칙으로 배워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원하는 게 나온다라는 규칙. 보호자는 사랑으로 했는데, 강아지는 학습으로 받아들인다. 그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지쳐서는 더 명확하다. 하루가 너무 길면 사람이 제일 먼저 포기하는 게 일관성이다. 오늘은 안 된다고 했다가, 내일은 그냥 넘어가고, 모레는 화가 나서 혼내고. 강아지 입장에서는 규칙이 사라진 집이 된다. 규칙이 없는 집에서 강아지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려고 한다. 짖고, 물고, 지키고, 도망가고. 그렇게 자기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급한 마음은 가장 잔인하다. 민원이 오고, 가족이 눈치를 주고, 빠르게 진정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면 보호자는 당장 효과가 보이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크게 혼내거나, 놀라게 하거나, 억지로 눌러버리는 방식… 짧게는 조용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이 안정이 아니라 잠시 멈춤일 때가 많다. 그리고 얼어붙음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터지기 쉽다. 더 크게, 더 통제 불능의 방식으로… 그래서 나는 잘못이라 말해야 한다. 그런데 “그건 잘못이에요”라고 바로 말하면, 보호자는 대개 두, 세가지 반응중 하나를 보인다.
하나는 죄지은듯 쳐진다. 역시 내가 문제였지라고 자책한다. 다른 하나는 방어가 올라온다. 그럼 어떡하라는 거죠? 저는 이렇게밖에 못 해요. 혹은 가끔이긴 하지만 울 강아지는 제가 제일 잘알아요라고 하며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면 교육이 힘들어 지는거다.
그래서 나는 틀림을 말할 때, 틀림부터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순서를 바꾼다.
관찰 → 의도 인정 → 결과 설명 → 대안 제시
이 순서는 나를 덜 날카롭게 만들고, 보호자를 덜 무너지게 한다. 분위기가 부드러우면 훈련 전달도 쉽고 나도 편하게 교육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짖을 때 안아주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짖을 때 안아주셨네요. 그 순간에 아이가 너무 불안해 보였죠.”
(의도를 인정하면 보호자의 마음이 먼저 내려온다.)
“그런데 안아주는 행동이 아이에게는 ‘짖으면 안아준다’로 저장될 수 있어요.”
(결과를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 ‘학습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대신 짖기 전에 자리를 안내하고, 조용해지는 순간에 안아주는 쪽으로 바꿔볼까요?”
(대안이 따라오면 보호자는 다시 할 수 있다.)
같은 내용인데도 전달되는 온도가 달라진다. 훈련에서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지속’이라서, 나는 지속을 해칠 말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다. 보호자가 무너져버리면, 강아지는 더 힘들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늘 이렇게 아름답게 되진 않는다. 어떤 집에서는 ‘틀림’을 말하는 순간, 내가 그 집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보호자가 이미 많이 상처받아 있을 때. 그때는 틀렸어요라는 말이 사실 당신은 부족해요로 들릴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상대의 오늘 컨디션이 말의 의미를 바꿔버린다.
내가 찾은 또 하나의 방법은, “틀림”을 직접 지적하기보다 ‘목표’를 먼저 합의하는 것이다.
“목표로 할건 완전 무음이 아니라, 짖음이 짧아지고 회복이 빨라지는 거예요.”
“우리가 원하는 건 아이가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불안해도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걸 배우는 거예요.”
목표를 맞추면, 그 다음부터 보호자도 스스로 질문을 바꾸기 시작한다.
내 말이 논리적으로 맞아도, 보호자의 마음이 닫히면 그 집의 내일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그 집이 내일도 계속해볼 수 있는 힘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말의 강도를 조절한다. 어떤 집에서는 단단하게 말하고, 어떤 집에서는 더 부드럽게 말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꼭 한 번은 덧붙인다.
“지금까지 해오신 것만 봐도, 이미 책임감 있는 보호자세요. 방법만 조금 바꿔보면 돼요.”
보호자는 완벽할 필요가 없고, 강아지도 완벽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만 서로를 덜 힘들게 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옮겨가면 된다. 틀림을 말하는 일은 결국,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같이 걸어가자고 손 내미는 일이니까. 이렇게 글까지 써가며 되새겨보지만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쓰다보니 정말 주절주절이 되어 버렸지만 .. 뭐 그렇다….. 결론은 말을 잘 하자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