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랑 놀고서 가만히 의자에 앉으면 마음이 동 할 때가 있습어요. 현관에 들어서며 털에 묻은 바람을 털어내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곰이를 바라보다가 소파에 앉으면 “오늘도 무사히 잘 지냈다”는 느낌이 천천히 내려앉거든요. 그런 날에는 괜히 마음이 말랑해져서, 따뜻한 책을 찾게 되는데요. 얼마 전엔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책을 읽었어요.(사실 밀리에서 읽었어요.) “강아지 나라에서 온 편지” 입니다.
이 책은 “강아지 나라”라는 상상 속 공간에서 도착한 편지처럼, 남겨진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이야기들이 이어져요. 크게 울게 만들기 위해 과하게 감정을 몰아붙이기보다는, 우리가 정말로 자주 품게 되는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서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주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내가 더 잘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아이는 지금 괜찮을까”, “내가 이렇게 그리워하는 게 맞는 걸까” 같은 질문들이요. 읽다 보면 그 질문들이 사라지진 않지만, 조금은 덜 날카롭게 변해요. 마음속에서 상처처럼 박혀 있던 말들이 ‘기억’과 ‘고마움’ 쪽으로 천천히 방향을 바꾸는 느낌이랄까요.
책은 여러 강아지들의 이야기로 흐르는데, 각 이야기마다 남겨진 사람의 후회와 그리움이 다른 결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어떤 이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준비할 틈이 없었고, 어떤 이는 오래 아팠던 시간을 견디며 마음의 빚을 더 크게 품고 있고, 또 어떤 이는 “이제 괜찮아졌다”는 말이 스스로에게는 거짓말처럼 느껴져서 괴로워하죠. 그런데 그 모든 감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버리지 않아요. 대신 “그 마음이 당연하다”고 말해주고, 그 마음이 너무 오래 나를 짓누르지 않도록 살짝 옆에서 받쳐주는 방식이에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 책의 시선이 “떠나간 아이”를 슬픔의 상징으로만 두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오히려 우리가 사랑했던 존재가 남겨진 사람을 위로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다 보니, 읽는 사람은 조금씩 숨을 편하게 쉬게 돼요. ‘내가 못한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것’이 떠오르고, 미안함만 남는 게 아니라 고마움이 함께 남아요.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따뜻해져요. 울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 울음이 무너지는 울음이 아니라 “그래, 사랑했지” 하고 인정하는 울음에 가까워요.
책을 읽는 동안 제일 많이 생각난 건 곰이였어요. 지금 내 옆에 있는 존재라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우리는 자주 잊고 살잖아요. 곰이는 오늘도 평소처럼 밥 잘 먹고, 장난감 물고 와서 놀자고 하고, 창가에 앉아 바깥 소리를 듣다가 졸고… 정말 아무 일도 아닌 하루를 살아냈는데, 그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사실은 가장 큰 행복이라는 걸 이 책이 조용히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책 덮고 난 뒤엔 괜히 곰이를 한 번 더 오래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짧게 말했어요. “오늘도 고마워.”
이 책은 특히,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분들에게 잘 맞을 것 같아요. 반려견을 떠나보낸 이후 시간이 지나도 자꾸 같은 장면에서 멈춰버리는 분들, 혹은 아직 함께 살고 있지만 문득 헤어짐이 두려워져서 마음이 쿵 내려앉는 분들, 그리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지만 너무 무겁거나 거창한 말은 부담스러운 분들에게요. 강아지 나라에서 온 편지는 큰 소리로 “괜찮아!”라고 외치는 책이 아니라, 조용히 옆에 앉아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는 책이에요. 그래서 더 오래 남아요.
책을 다 읽고 나서 저는 작은 다짐을 하나 했어요. 특별한 걸 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그냥 오늘처럼 평범한 하루를 조금 더 소중하게 대하겠다는 다짐이요. 산책 한 번 더 천천히 하기, 쓰다듬을 때 휴대폰 내려놓기, “잘했어”를 더 자주 말하기. 어쩌면 이런 것들이 결국 사랑의 방식이니까요.
혹시 요즘 마음이 조금 헛헛하다면, 혹은 누군가를 많이 그리워하는 계절을 지나고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펼쳐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다 읽고 나면 완전히 괜찮아지진 않아도, 적어도 마음이 덜 차가워진 채로 밤을 맞이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큰 힘이 되더라고요.